전장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끌려가는 소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가니 나까지 그때의 두려움이 전이된 것 같았어. 그리고 들리는 故김학순 할머니의 증언들.
위안부 증거 없다는 일본 정부 말에 대항해 자신이 그 증거라는 말씀을 하시는 모습을 보니, 피해자들이 버젓이 있는데도 그걸 모르는 체하는 일본의 태도에 몹시 분개할 수밖에 없었어.
어두운 공간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면 피해자분들의 말이 벽에 새겨져 있는데, 처음에는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가득했어. 그런데 갈수록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라는 할머니들의 호소, 한편으론 희망의 말들로 가득찬 벽을 보며 이 문제를 결코 잊지 말아야겠다는 깊은 감정을 느꼈어.
윗층으로 올라가니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 수 있었어. 독자들은 위안소가 언제 세워졌는지 아니?
1932년에 시작된 것이 1937년(일본의 중국침략)부터 본격화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어. '위안부'라는 말도 사실은 가해 남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단어야. 역사적 실체를 밝히기 위해 계속 쓰이긴 했지만, 유엔특별보고관은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전시 중 군대 성노예제'로 규정했어. 또, 일본 정부가 사용한 '위안부'라는 용어는 문제를 축소•은폐하기 위한 시도라고 지적하면서 '위안소'는 다름 아닌 '강간 센터'라고 칭했지.
제일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위안소를 사용하는데 계급별로 요금과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과 종전 후 위안소에 있던 피해자들에게 자살을 강요하고 집단으로 죽이거나 그대로 버려놓고 갔다는 것이었어. 인간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들이야.
만약 아무도 피해 사실을 증언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일본 정부에 제대로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을까?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피해자분들의 진술이 있었기에 우리는 일본 정부가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게 되었어. 그리고 피해자분들과 연대한 많은 시민들의 행동도 이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묻히지 않게 한 큰 힘이기도 해. 피해자분들과 또 수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온 사진들을 보니 울컥한 감정이 차올랐어. |